최경창(崔慶昌·1539~1583)의 ‘채련곡(採蓮曲)’은 이렇다. “물가 언덕 아득하고 수양버들 늘어서니, 조각배 저 멀리서 채릉가를 부르네. 붉은 옷 다 진 뒤에 가을바람 일어나면, 날 저문 빈 강 위에 저녁 물결 일겠지(水岸悠悠楊柳多, 小船遙唱採菱歌. 紅衣落盡西風起, 日暮空江生夕波).” 어여쁜 아가씨들이 연밥 따며 부르던 고운 노래는 꿈결의 이야기였나? 붉은 연꽃 다 진 방죽 위로 가을바람이 한차례 훑고 지나가자, 저문 빈 강에는 쓸쓸히 저녁 물결만 남았다. ‘청창연담(晴窓軟談)’에 나온다.
허균(許筠·1569~1618)은 ‘힐난하는 이에게 대답함(對詰者)’에서 오활한 처세를 나무라는 그에게 대답한다. “내 성품 못난지라, 성글고 거칠어서, 기교를 못 부리고, 아첨도 못한다네. 만에 하나 수틀리면, 잠깐도 참지 못해. 타고난 성품대로, 상유(桑楡)에 이르렀지. 세리(勢利)로 사귄 벗은, 때가 되면 달라져도, 우리 사귐 변치 않음, 돌인가 무쇠인가? 마음에 흡족하면, 기쁘고도 즐거워서, 내 존재도 망각하고, 침식조차 잊는다네(吾性鄙拙, 疏而且麤. 無機無巧, 不諂不諛. 有一不協, 不忍須臾. 從天所賦, 以至桑楡. 勢交利交, 有時必渝. 此交不涅, 石耶金乎. 當其得意, 欣欣愉愉. 不知有我, 忘寢及餔).”
글에 나오는 상유(桑楡)는 흔히 노경(老境)을 일컫는 표현이다. ‘회남자(淮南子)’에서 “해가 서편에 드리우면 햇살이 나무 끝에 걸린다. 이를 일러 상유(桑楡)라 한다(日西垂, 景在樹端, 謂之桑榆)”고 한 데서 나왔다. 날이 뉘엿해지면 해가 뽕나무나 느릅나무에 걸리므로, 해 질 무렵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상유만경(桑楡晩景)은 그래서 만년(晩年)이라는 뜻으로 쓴다. 하지만 상유는 실제로는 서쪽 하늘 별자리 이름이다. 해가 상성(桑星)과 유성(楡星)의 위치에 걸린 때를 말한다.
노수신(盧守愼·1515~1590)은 진도 유배지에서 지은 ‘옥주이천언(沃州二千言)’에서 “마침내 깊은 겨울 홀로 지내며, 안거(安居)에서 상유를 보전하리라(兀兀遂深冬, 安居保桑楡)”라고 노래했다. 시련의 날에는 혼자뿐이다. 상유만경! 맑고 깔끔한 노년을 지키기가 참 어렵다.